부스 지킴이가 되기까지 -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출근할 때부터 느낌이 싸했다. 9월에 도서전이 열리면 한빛도 참가하겠지? 그럼 상주 직원이 필요하고, 그럼 누군가가 가야겠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입사할 때 다섯 명이던 팀에는 이제 팀장님과 나 둘만 남았다(이건 서바이벌인가?!) 고개를 높게 들어 시야를 A동 5층 전체로 넓혔다. 왠지… 내가 가게 되리라는 강한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불특정 다수와 만나는 일이 너무나 겁시 나는 내향성 인간인 나… 다급한 마음에 영업마케팅팀 수미 대리님께 문의했다. 수미 대리님은 사원과 대리급 직원 대표로 노사협의회에도 참석하니 왠지 도서전 행사에 능통하시리라 생각했다. 

 


오호! 그렇구나! 코로나19로 축소된 서울국제도서전. 품을 줄이고 최소인원으로 운영을 하는군! 아침부터 동동 뛰던 마음을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잠시 후 마주할 운명은 조금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네 시간이 지난 오후 2시 30분. 띠링띠링띠링. 수미 대리님과의 채팅창 알림이 울렸다. 



이후엔 몇 개의 장면만이 편집되어 기억난다. 룰렛을 돌려 도서전에 참여할 실용출판부 편집자 1명을 뽑기로 했다... 팀별로 명단을 제출했다... 여행팀에선 내 이름을 올렸다… 룰렛이 돌아갔다.. 권팀장님의 개인 메시지가 왔다…



잊지 말자… 뽑혀서 기쁜 건 복권뿐이다….

 


한빛 도서전 부스 소개 - 서울국제도서전, 현장속으로 


서울국제도서전 둘째 날인 9월 9일 목요일 오전 9시 40분. 택시를 기다리는 내 양손은 돌돌 말린 여섯 장의 포스터, 화면은 크고 (큰 만큼 무거운) 노트북, 도서전 이벤트 상품을 착착 담은 가방으로 짐보따리로 한가득이었다(물론 1g 정도의 과장을 보탰습니다) 

무거운 건 손 만이 아니었다. 도서전으로 향하는 내 어깨 위에는 막중한 임무가 놓여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업마케팅팀에서 제작한 A3 사이즈의 포스터 6장을 무사히 한빛 부스로 운반하고, 비말 차단 스크린에 온전하게 부착하는 것이었다.

택시 타고 도서전을 이동하려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택시를 타고 도서전에 가는 이유는 늦잠을 자서 지각했기 때문이 아니요, 잔고가 넉넉하여 취미가 ‘플렉스’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건 단지 포스터를 무사히 운반하라는 임무와 함께 수미 대리님께 건네 받은 ‘법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미 대리님 아리가또!) 자 이제 무사히 도서전으로 이동해서 임무를 완수하면 될 일!

벗 아임 크라잉…. 신촌에서 9시 45분에 택시를 탑승했는데 10시 50분이 넘어서야 성수에 도착했다. 지하철로 25분 거리를 택시를 타서 65분 만에 도착한 기적의 이동 시간에 정신이 아찔했다. 서울에서 유년 시절을 제외하고 일평생을 살았거늘, 이놈의 교통 체증은 상상의 영역을 가볍게 초월했다. 다급하게 택시에 내려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는 성수동 에스팩토리까지 멧토끼처럼 폴짝거리며 뛰어갔다.

잠시 후 도착한 에스팩토리. 오호라, 이미 입장을 대기하는 방문객이 입구 앞에 길게 늘어섰다. 10시 30분까지 부스에 도착해달라는 행은 대리님의 당부가 머리를 가볍게 스쳤다. 포스터는 아직 돌돌 말린 채 내 손에 그대로 있었다. 난 아직 입장도 못했는데…?

 

처음 만난 한빛 부스 하이…!  부스를 보니 왜 수미 대리님과 행은 대리님이 포스터를 부착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뭔가… 허전해… 마이… 심심해…. 다른 출판사들 부스도 궁금하고… 옆에는 전시공간도 있어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내 안의 작은 아이는 한눈을 파는 나를 단호하게 채찍질했다.

 

 

수미 대리님이 손수 작업한 포스터 구상도. 철저한 새럼...

 

스카치테이프와의 짧은 (줄 알았지만 나에게는 영원과도 같았던) 사투 끝에 포스터를 모두 부착한 모습.  비말 차단막이 아주 포스터로 빼곡해졌다. 의자에 털썩하고 앉아서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방문객들이 입장하기 전에 임무를 완수했다는 안도와 성취, 뭐 그런 비스무리한 감정들을 느끼려는 바로 그 찰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

다. 그건 바로…


포스터를 부착하고 전리품을 보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으니 방문객이 저 멀리서부터 입장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전 서울 국제도서전보다 규모가 축소되고, 방문객의 흥미를 자극할 콘텐츠도 부족해 예년보다 참가사도 방문객도 확연히 적어진 느낌이었다. 2019년 코엑스엔 우선 ‘킹심당’의 소보로빵이 있었고, 아우라를 내뿜는 ‘정우성’이 있었는데! 이번엔 암것도 없어!

방문객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한빛 굿즈 뽑기 이벤트. 굿즈를 궁금해 하는 분이 많아서 아예 뽑기판 위에 굿즈를 차례로 나열했다. 단연 인기 상품은 공룡 화투였는데 9시간 동안 뽑기 이벤트에 참여하신 분 가운데 공룡화투를 뽑으신 분은 단 한 분도 없었다. 2등, 3등 4등이 각각 한 명씩, 나머지는 죄다 5등을 뽑았다. (저도 공룡 화투가 참 탐이 났는데요… 네,,,? 네…)

부스 뒤쪽 공간. 바로 옆은 출판사 ‘생각의힘’이었다. 이날 저자의 북토크 행사도 있었던 탓인지 부스 하나에 상주 직원이 서너 명 가량 있어 복작복작했다. 포스터도 크게 제작해 뒤쪽 공간도 꾸미고 옆쪽에도 달고… 사생결단의 느낌이 느껴져 부스를 지키는 내내 오른쪽이 뜨거웠다. 

 

여행팀에서 만든 여행서 두 권. 그래도 펴 보는 방문객이 더러 있어서 기뻤다. 하지만 두 책을 만든 미경 과장님과 지영 대리님은 자리에 없다(...) 서바이벌 게임 같은 느낌이 든다.

 

 

한빛 책을 알아보는 독자들이 (종종…) 있었다. 도서전 참가에 의의를 두는 출판사가 있는고 하면, 도서전에 사활을 거는 출판사가 있었고, 그 차이는 흘깃 봐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도서 구매를 희망하는 독자에게 “구매는 가까운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해주세요^_< “ 하고 안내해드리면서 초큼 머쓱했던 건 안 비밀. 

 

성수 요즘 뭐 젊은 친구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라가지고 맛집도 많다던데 에스팩토리 주변에는 그런 맛집일랑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고 있기는 있었는데 후딱 먹고 가야 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나를 짓눌렀고, 압박 속에서 결국 내가 찾은 건 스벅이었다. 바질 치즈 베이글(?)과 두유라떼를 주문해서 후루룩 마시듯 먹었다.

 

도서전 부스 참관기
D동 2층, 함 잡솨봐

오후 세 시쯤되자 방문객이 쫙 빠져 한산했다. 한빛 도서전 단톡방에 주변도 한 번 둘러보세요, 라는 말씀에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이 말을 을매나 기다렸는지 모르실 거예요!)  D동 1층도 몹시 궁금했지만, 그래도 부스를 곁에 두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D동 2층만 훌쩍 둘러보기로.

 

에디시옹 장물랭과 밝은세상 출판사 부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표방하며 책을 만드는 에디시옹 장물랭은 책마다 독특한 장정과 별색 사용이 특징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장물랭 출판사의 책을 보면서 호오호오, 감탄하기를 여러번. 서점에서 책을 사고 받은 <THE LAND OF NOD> 포스터를 작고 귀여운 방에 잘 부착해두고 있다(TMI) 출판사의 대표작 <새내기 유령>는 4원색이 아니라 5별색을 베이스로 작업했다는데… (단가...몹시...궁금…) 

에디시옹 장물랭 옆은 귀욤 미소 책으로 유명한 밝은세상 출판사였다. 책을 불투명한 종이로 포장해서 어떤 책인지 구매자가 알 수 없게 만들고, MBTI별로 추천 책을 분류한 전략이 독특했다. 어떤 책인지 알 수 없기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느낌적 느낌. 무엇보다 MBTI는 통계이고 수학이고 과학이니까… 마음이 끌렸으니 구매는 하지 않았다^_<

 

이번 서울국제도서전 주제가 ‘굿닛’이라던가? 뭐 그랬는데 정말 감흥이 1도 없었다(이렇게 말하면 혼나려나..깔깔…) 그래도 여기서 틀어주는 노래들은 좋았다...

 

 

“성수기도 없는데 비수기라니”라는 제목을 보고 주저 앉을 뻔 했다.. 지갑을 열어 책을 구매할지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을지 고민하다가 카메라를 켜서 사진을 찍었다(?)

 

 

출판사 이름이 어질어질하다… 지구불시착….뚀뿅책..? 이름의 의미를 묻고 싶었지만 왠지 물으면 안될 것만 같은 강한 느낌이 들어서 사진만 찍었다. 책마다 직접 친필로 소개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진열한 책 표지 디자인이 모두 동일하되 색만 변화를 준 출판사… 극강의 가성비라고 해야 하려나? 하지만 색감이 안정적이어서 보고 있으면 묘하게 기부니가 좋았다(...) ‘난생처음 시리즈’는 출간할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고 한 권도 구매하지는 않았다(응?).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이번에도 구매하지 않았다(응???).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는 어쩌다 참가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즈도 이벤트도 으리으리했다. 저도 이벤트에 참여했는데요. 제발 … 날 뽑아줘 ..

 

 

귀여운 백곰한테 왜 저렇게 옷을 입혀놨을까…? 그냥 흉측했고 불편했다. 문장도 읽고 싶지 않았다. 다른 부스의 어린이책을 보고서야 마음을 안정시켰다. 헐 너무 귀여워.

 

 

움직씨 출판사의 성냥 디자인 눈길 아주 사로잡아 아주 좋아… 움직씨께 구묘진 작가의 <악어 노트>와 <몽마르트르 유서> 구매해서 잘 읽었다고 극내향성의 벽을 깨고 용기내서 인사를 드렸다. 허허… 웃으시더니 담배케이스 굳즈를 턱 하고 주셨다. 호...호쾌해.. 
움직씨 옆에 있던 출판사는 이름이 뭐였지...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단행본이 단 두 권밖에 나오지 않아서 저렇게 두 권으로 진열대를 꾸민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책이 읎지! 재고가 없냐(?)

 

 

문학자판기… 최근 도서전 행사 가면 거의 단골처럼 자리한다. 나도 뽑아봤는데… (이하 생략)

 

 

서울국제도서전...굳즈 예쁘더라...그리고...비싸더라… 부자되면 사야지 다짐했다. 그런데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제132회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못 살 것 같다. 나 말고 다른 분들이 많이 사주겠지 깔깔… 그나저나 출판문화 표지 너무 강렬해… 세랑 작가님과 소윤 님… (내적 야광봉 흔들어!)

 

 

오… 약간 출판사 이름이 여러 개 혼재되어 있던 부스. 6월에 편집해서 출간한 <지리의 쓸모>의 저자인 전지모 쌤들의 전작이 보여서 찰칵했다. 직원분께 질척거리면서 저...저도… 전지모쌤들이랑 작업했어요… 인사드렸다. 부스 직원은 담당 편집자는 아니셨는데, 허허… 그.. 쉽지 않았다고 하더이다, 하고 고생을 알아주셔서 나 혼자 묻고 나 혼자 공감했다.

 

 

2021 서울국제도서전 최고(?) 이벤트. 바로 화재 경보. 저녁시간이 다가오는 오후 화재경보가 울렸고 전원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사진은 안내 방송을 듣고 건물 밖으로 대피한 방문객들. 한빛의 소중한 부스와 책들을 차마 놓고 갈 수 없었던 나는 자리를 지켰다, 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안내 방송은 나오는데 부스 바로 옆에서 무전기를 착용한 도서전 직원이 전혀 긴장한 모습이 아니라 오작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정말 오작동이었다.

 

 

저녁은 에스팩토리 D동 인근에 있는 김밥 집에서 김밥을 후룩 먹었다. 참치김밥으로 두 줄… 도서전 후기에 이런 내용을 적어도 되겠지…? 도서전 후기가 아니라 그냥 수다방 게시글이라고 생각해주십쇼...하하. 저녁 먹고 다시 돌아오는데 하늘이 아주 주황빛으로 물들어서 마음이 말캉해졌다. 마음은 말캉 사진을 찰칵.

 

 

도서전 끝물 방문객이 거의 빠진 시점. 한빛 부스 맞은 편에 있는 달그림 출판사 부스를 방문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서로 눈빛 교환하며 (사실 가벼운 인사와 대화도 슬쩍 했었다) 9시간은 동고동락한 사이가 아닌가. 명함도 주고 받고 이야기도 나눴다. 달그림 출판사의 책 장정이 너무 신기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병풍 장정이라고 하면 되나..? 책이 저렇게 병풍처럼 촬라ㅏ라락 펼쳐진다. 가코이… 스게… 멋져… 동화책, 그림책 좋아하는 새럼… 달그림 출판사의 책을 놓치지 마시라요!

 

 

도서전에서는 요롷게 딱 두 권만 구매했다. <토마토 나라에 온 선인장>은 한빛부스의 이웃사촌(?) 달그림 출판사 부스에서 대표님의 맞춤형 도서 서비스를 받아 구매했다. 토마토 나라에 선인장이 유학와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흑흑 눈물 없이 볼 수 없어. <행복한 질문>은 이전부터 좋아하는 책이라 종종 선물용으로 구매한다. 이번에도 선물하려고 한 권 구매.

이제 퇴근 준비하려고 슬슬 정리하는데 시꺼먼 정장 입은 사람들이 돌아댕기면서 생수를 건넸다. 뭐지 주...주최측인가? 싶었는데 한솔피엔에스라고 했다. 생수를 건네주신 분은 한빛 담당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시간이 시간인데 퇴근하고 오신 건가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목이 한참 마를 점심 이후에 오셨으면 더 좋았을… 아..아니다...

생수 한 병 원샷 시원하게 때리고 부스 정리(사실 정리랄 것도 딱히 없었지만...하하…) 한 후 퇴근했다. 이렇게 9월 9일 별일 없이 부스를 지킨 하루 일과였습니다. 끄으으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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